안녕하세요.
히메노라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은인F&B 김대희 대표입니다.

경험거래소, 이런 인프라가 있다는 게 세상 신기하네요. 정말 좋은 취지인 것 같아 셀러로 등록하게 됐습니다.

저는 1990년생, 올해 31살이고 대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창업도 대전에서 시작했고, 장사에서 사업으로 전환한 배경지도 대전과 세종시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용돈을 받으려면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는 음식점에서 서빙이나 청소, 설거지 같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절대로 공짜로 용돈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그런 어머니가 싫었지만, 사업가로 성공한 지금은 어머니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22살 군 제대 직후 회사생활과 함께 1년 8개월 동안 길거리 옷 장사를 시작했죠. 당연히 제가 어릴 때부터 음식점을 운영하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회사는 은행 경비업체였는데,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옷 사진을 보여주고 선주문을 받았습니다. 늦은 밤에는 같은 방식으로 유흥업소 웨이터들에게 옷을 팔았습니다. 회사 퇴근 후 오후 4~5시 시작해서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옷 장사를 했습니다. 당시 회사 월급이 160만원이었는데, 옷 장사로 월평균 800만원, 최대 1500만원까지 벌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던 고부모께서 10년만에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고부모와 함께 23살이던 해 12월, 이자카야를 시작했습니다. 저로서는 외식업을 처음 배운 계기가 됐지요. 그런데, 7개월 만에 폐업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탓에 겁이 많았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C~D급 상권, 9평 남짓에 월세 70만원짜리 점포였습니다. 저의 인건비도 안 나왔습니다. 수익이 30~50만원 밖에 안됐죠.

이 동네의 메인 골목에 횟집이 있었습니다. 돈을 벌려면 회 뜨는 기술을 배워야겠다 결심했고, 평소 친분이 있던 횟집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재혼한 사장님은 신혼생활을 즐기려고 일할 사람을 구하던 차였습니다. 돈은 안 받을 테니 최단시간에 회 뜨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주말에는 아침 7시까지 일했습니다. 이곳에서 6개월 동안 해산물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이 횟집은 제가 입사한 그 달에 개점 이래 최고액의 매출을 찍습니다. 이랬습니다. 이 횟집은 특이하게 길거리에 인접한 곳에서 회를 떴고, 자연스럽게 횟집 앞을 오가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인근에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나이트클럽이 있었는데, 저는 그 나이트클럽 손님이나 웨이터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즐겼고 최대한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곧바로 나이트클럽 손님들 중에서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고, 매출이 급상승했던 겁니다.

횟집 사장님은 돈을 받지 않겠다는 저에게 350만원을 입금하고는 꼭 같이 일하자며 붙잡았습니다. 입사 후 한 달만에 모든 메뉴를 마스터했고, 사장님은 아예 횟집 운영을 맡겼습니다. 24살 어린 나이에 횟집 사장님을 경험한 겁니다.

횟집에서 6개월 동안 일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낮에는 한우 고깃집, 밤에는 술집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사장님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당시 세종시가 한창 조성될 때였는데, 이곳에서 1년 6개월을 일하며 횟집과는 전혀 다른 한식 메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우 고깃집에서 육개장과 김치찌개를 제대로 배웠습니다. 북한 출신 사부님께 정갈하고 담백한 음식비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습득했지요.

26살이 되던 해 4월, 다시 독립했습니다. 그간 횟집과 한우 고깃집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초밥전문점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장소는 이자카야로 망했던 대전의 바로 그 점포를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이자카야는 왜 망했을까, 이유가 뭘까,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만약, 그곳에서 다시 망한다면 아예 장사를 안 하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일종의 오기와 발동한 겁니다.

결과는 초대박이었습니다. 주방에서 혼자 초밥과 한우초밥을 만들었고, 홀에 직원 1명을 두고 운영했습니다. 일평균 100만원, 월평균 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냐구요?

세종시에서 일하던 한우 고깃집에는 단골손님 중에 관공서 고위임원, 중소기업 사장님, 회장님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은 어린 나이에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는 저를 좋게 보셨던 겁니다. 제가 초밥집을 낸다고 하자 투자하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초밥집은 순수 제가 모은 자금으로 창업했지만, 이 분들이 초밥집 단골이 되어 주셨습니다. 갑자기 비가 오는 날엔 잽싸게 우산을 사다 놨다가 드리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를 많이 한 덕분이었습니다.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염홍철 대전시장님도 저의 단골이셨습니다.

초밥집 오픈 1년 만에 1호점을 어머니께 맡기고, 2호점을 오픈했습니다. 2호점도 잘 됐습니다. 얼마 후 더 1, 2호점을 정리하고, 더 큰 점포를 마련해 초밥 겸 이자카야 전문점을 냈습니다. 월매출 1억원, 순수익은 3000만~4000만원이었습니다. 장사에서 사업으로 전환된 시점이었습니다. 6개월 후 대전에 2호점을 내고 대박이 나서 법인을 설립하고 3년 정도 운영했습니다. 이밖에도 갈비탕·육개장 전문점(춘빈식당), 일본식 우동과 오니기리 전문점(츄르릅우동), 낮에는 베이커리카페 저녁은 펍 전문점(봉리단길) 등을 운영했습니다.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은 라멘 브랜드로 시작했습니다. 순대국밥집처럼 24시간 운영하는 라멘집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꽤 유명한 ‘히메노라멘’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월매출 1억원이 넘었습니다. 이후 가맹점 15개를 냈습니다.

2018년 12월에는 몽골에도 진출했습니다. 어느 날 한 몽골인이 찾아와 히메노라멘 브랜드를 몽골에서 운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직접 몽골에 가서 보니, 현지에 맞는 레시피가 필요했지요. 한국 라멘에는 돼지고기를 토핑으로 올리는데, 몽골은 소고기와 말고기로 바꿔줬습니다. 몽골 가맹점주는 건물주인 데다 인건비가 한국의 5분의 1에 불과해 매출이 월평균 3000만~5000만원에 달합니다. 마진률은 무려 50%입니다. 이후 같은 건물에 커피숍과 한국식 샤브샤브전문점도 오픈해 드렸습니다.

2020년 2월, 라멘 브랜드에 이어 김치찌개 브랜드를 오픈했습니다. 충남 천안에 김치찌개 전문점을 내고 테스트를 했는데, 충북 청주에서 오신 분이 드셔보고 청주에 2곳을 오픈해 본사도 없는 가맹점이 3곳이나 됐습니다.

이렇게 초밥, 라멘, 김치찌개 3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꽃길만 걸어온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기도 당해봤고, 남모를 고난도 많았습니다. 하루 3~4시간 자면서 노력한 결과입니다. 외식업을 계획하고 있거나, 현재 운영하시는 분들께 저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를 광고하거나, 가맹점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제가 고생을 해봤기에 성공과 실패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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